정하슬린
어떤 이의 책갈피와 히치하이킹 하기
출시 된 이후부터 5~6년 이상 내 생활 속에 들어와 있는 플랫폼이 있다. 핀터레스트(Pinterest)와 인스타그램(Instagram)이다. 핀터레스트에서는 이미지를 모으고 분류한다. 이미지를 쉽게 압정으로 꽂아서(pin) 자신이 이름을 붙인 카테고리에 담을 수 있다. 인스타그램은 어떤 이가 본 것 또는 갔던 곳 등의 이미지를 통해 누군가의 관심사나 분위기를 파악하기 좋다. 인스타그램은 핀터레스트에 비해 카테고리를 나누어 분류할 수 있는 기능은 없다. 과거에 취향을 선별해서 이미지로 모아두는 플랫폼이었던 인스타그램은 많은 기능이 추가된 후 자신을 드러내고 누군가와 연결되야 할 것처럼 느끼게 한다. 이제 인스타그램은 나에게 다소 피곤한 장소다. 하지만 핀터레스트는 처음의 기능 그대로 간편하게 반복할 수 있는 취미로 여전히 남아있다. 내가 어떤 것을 만들고 드러내야 한다는 압박 없이 편히 지속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핀터레스트는 사용자가 선택한 이미지를 계속해서 모으게 하고, 이름을 붙이게 하고, 분류하게 도와줄 뿐이다.
핀터레스트의 출입구로 들어가면 이전에 보관해 놓은 이미지와 연관된 이미지가 일련의 알고리즘을 통해 노출되어 있다. 펼쳐진 알고리즘에서 내가 기존에 분류해둔 카테고리와 연결 지점이 있는 것을 담기도 하고, 또 새롭게 카테고리를 부여할 수 있는 것들은 따로 담아 이름을 붙여준다. 이러한 과정은 농사를 짓는 과정과 유사하다. 농사를 지을 때는 처음에 밭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밭의 이름을 붙여주고, 씨앗 몇 개를 심어 밭의 성격을 대략 규정한다. 밭에 심은 것들은 계속해서 관련된 알고리즘으로 자라나 흥미로운 이미지를 추천해주며, 모든 작물의 풍성한 성장을 유도한다. 여기서 내가 신경 쓸 일이 있다면, 밭이라는 카테고리에 밭의 성격에 알맞지 않은 작물을 심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뿐이다.
핀 되어 모인 이미지는 누군가가 모아낸 책갈피가 된다. 혹은 누군가가 책을 보다 마음에 들어 다음에 다시 보겠다고 다짐하며 접어놓은 종이 귀퉁이와 같다. 핀터레스트는 다른 이의 책갈피와 우연히 마주치게 한다. 이것은 모르는 이의 차에 올라 떠나는 여행인 히치하이킹(hitchhiking)과 닮았다. 다른 사람의 책갈피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굉장히 중요한 특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어떤 정보에 가닿기 위한 기존의 선형적 검색 방법을 비선형적으로 가능하게 해준다는 뜻이다. 흔히 원하는 정보를 구글에서 검색하고자 하면 우리는 일단 무엇을 알고 싶은지 스스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가닿을 수 있는 검색어를 알아야 한다. 머릿속에서 유추한 검색어를 통해 곧바로 원하는 것을 알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검색어를 선택하는 방향을 바꾸거나 검색어의 종류를 소거해가며 원하는 것에 가까워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에 비해 핀터레스트의 비선형적인 검색 방법은 언어화하기 쉽지 않은 것, 또는 미처 몰랐던 것을 찾기에 효과적이다. 다시 말해, 원하는 정보가 있어 검색하고 얻어내는 게 아니라, 이미 거기에 있었던 것을 ‘우연히’ 알게 되는 것이다. 혼자서 책을 읽고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닿을 수 없는 무수한 시간과 맥락을 접할 수 있다.
수많은 정보로 가득한 우주에서 내가 반복한 유희적인 행동의 결과로 누군가가 만들어 둔 책갈피를 발견한다. 원본의 맥락에서 떨어진 책갈피가 어쩌다가 여기에 있는지, 그것을 ‘핀’해서 모으다 보면 다시금 책갈피의 원본이 궁금해진다. 이 이미지는 어디에서 온 것인지 고민하며 클릭(click)하면 이미 원본의 링크가 소실된 경우를 제외하고 원본의 맥락에 가닿을 수 있다. 최근에 나는 런던 박물관에 소장된 작품 이미지 하나를 찾았다. 조나단 킹(Jonathan King)이 18세기에 발렌타인데이를 기념해 쓴 편지였다. 세로 240mm, 가로 186mm의 편지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이모티콘과 닮은 기호와 글자로 가득하다. 내가 찾은 또 다른 이미지는 스미스소니언 디자인 박물관의 소장품이었다. 1845년에 제작된 줄무늬 직물 견본을 다룬 책의 이미지였다. 그 시대에 유행한 색과 다양한 질감의 천에 인쇄된 패턴들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이미 그곳에 있었던 것을 만나는 일, 모으고 분류하는 일, 그리고 그것이 어디에서 왔을까 관찰하고 추론하는 일. 정보가 너무나도 넘쳐나서 오히려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는 시대에 작가의 저장소에 본 것과 들은 것을 모으는 일. 아카이브로 엮어 작동시키고 이를 소화해 공유하고 싶은 마음. 그것은 새로운 무언가를 발명하려는 게 아니라, 기존에 있는 것을 통해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은 ‘매개’의 감각이다.